조리과학

지방 활용하기

김소먹 2024. 4. 3. 00:57

이란에서는 아주 특별한 날에만 식사 후 디저트를 준비하므로 집에서 빵을 만드는 경우가 거의 없다. 게다가 건강에 무척 관심이 많은 어머니는 설탕을 너무 많이 먹지 않도록 세심히 챙기셨다. 쿠키나 케이크를 먹으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힘겨운 과정을 거쳐 직접 만들어야만 했다. 한 예로 집 주방에는 스탠드 믹서도, 버터를 녹일 전자레인지도 없었고, 쓰고 남은 버터는 몽땅 냉동실에 들어가 있었다. 일단 쿠키나 케이크가 당기기 시작하면 늘 마음이 급해졌다. 레시피마다 버터는 실온에 두었다가 쓰라는데 꽁꽁 언 버터가 말랑해질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어쩌다가 그 가르침을 따를 때에도 수월하게 크림화할 수 있는 전동 믹서가 없어서인지 손에서 나오는 쿠키 반죽은 늘 엉망진창이었다. 너무 많이 치댄 반죽 사이에는 전혀 섞이지 않고 덩어리째 남아 있는 버터가 뒤엉켜 있었다. 그러나 십 대 특유의 근거 없는 자신감에 충만했던 글쓴이는 어떤 레시피보다 내가 더 똑똑하다가 생각했다. 그래서 버터를 그냥 녹이면 된다는 확신으로 말랑하게 한 다음 크림화하는 과정을 전부 건너뛰고 아예 가스레인지에 올려 다 녹여 버린 버터를 넣었다. 버터를 녹여서 넣으면 나무 숟가락으로 쿠키 반죽을 섞기가 훨씬 더 쉬워서 반죽 상태도 더 나아지고 틀에 붓기도 편했다.
하지만 버터를 녹인 바람에 공기가 포집될 가능성을 완전히 없애 버렸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결국 오븐에서 나온 쿠키나 케이크는 하나같이 푹 꺼진 모양에 뻑뻑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빵을 만드는 이유가 무조건 뭐든 달달한 것을 먹기 위해서였으므로 그런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오븐에서 어떤 결과물이 나오든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성인이 되어 입맛이 좀 더 섬세해진 후에는 다른 목표가 생겼다. 만드는 디저트, 더 솔직하게는 손에서 나오는 모든 음식이 언제나 맛있으면서 질감과 풍미도 딱 알맞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아마 여러분도 마찬가지리라 생각한다. 준비 단계에서 조금만 신경 쓰면, 충분히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다. 지방이 음식 맛에 강력한 영향을 주는 만큼 대부분의 요리는 지방을 한 가지 이상 사용해야 더 맛있어진다. 나는 이 방식을 지방 덧입히기라고 부른다. 어떤 문화권의 요리인가에 따라 어떤 지방이 잘 어울릴지 생각하고 다른 재료와 잘 어우러지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생선 요리에 버터 소스를 끼얹을 계획이라면 정제 버터를 사용해야 구울 때 사용하는 지방과 어우러져 서로를 보완할 수 있다. 블러드 오렌지가 들어가고 크리미 한 아보카도를 올린 샐러드에는 모든 재료에 암그루마토 올리브유를 골고루 뿌려야 감귤류 과일의 풍미를 더 깊이 느낄 수 있다. 완벽하게 바삭한 와플을 만들려면 반죽에 들어갈 버터는 녹여서 써야 할 뿐만 아니라 아침에 베이컨을 구워서 생긴 기름을 뜨겁게 달군 와플 팬에 발라야 한다. 한 가지 요리에 여러 가지 식감을 내기 위해 다양한 지방을 한꺼번에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포도씨유에 바삭하게 취긴 생선을 올리브유가 들어간 크리미 한 아이올리 소스와 함께 내는 것도 같은 원리다. 미드나잇 초콜릿 케이크에 오일을 사용해 최상의 촉촉함을 얻은 후 버터크림 프로스팅이나 부드러운 휘핑크림을 듬뿍 발라서 완성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방이 과도하게 첨가된 음식은 소금과 마찬가지로 지방의 균형을 다시 맞추어야 살릴 수 있다. 따라서 해결 방법도 소금이 과하게 들어갔을 때와 비슷하다. 즉 재료를 더 첨가해서 전체적인 양을 늘리거나, 산 성분을 첨가하거나, 물을 넣어서 희석한다. 또는 전분 함량이 높은 재료나 밀도가 높은 재료를 첨가하는 방법도 떠올릴 수 있다. 때에 따라 음식을 차게 식힌 후 지방 성분이 표면 위로 떠올라 굳으면 걷어 내는 방법을 활용하자. 또는 팬에서 기름에 절은 음식을 다른 그릇으로 옮기고 프라이팬을 깨끗한 종이 행주로 닦아 기름을 제거한다. 음식이 너무 말랐을 때, 또는 조금 더 풍부한 맛을 내고 싶을 때는 올리브우를 조금 첨가하거나 사워크림, 달걀노른자, 염소젖 치즈 등 크리미 한 재료를 더하면 식감도 좋아지고 풍미도 되살릴 수 있다. 두툼하고 바삭한 빵 사이에 지방이 없는 재료들을 높게 쌓아 너무 건조하게 느껴지는 샌드위치에는 비네그레트 드레싱이나 마요네즈, 연성 치즈, 펴 발라서 먹는 치즈, 부드러운 아보카도를 더하면 균형을 맞출 수 있다. 지방과 소금에 관한 지식이 쌓일수록 요리에서도 재즈로 치면 즉흥연주를 할 줄 아는 수준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지방은 음식의 질감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소금과 지방 둘 다 음식의 풍미를 강화한다. 요리를 할 때마다 소금과 지방으로 풍미와 질감을 향상하는 연습을 해 보자. 샐러드 위에 크리미 한 리코타 살라타를 듬뿍 얹을 예정이라면 소금을 일단 적게 사용하고 고명으로 이 짭짤한 치즈를 모두 넣은 다음에 샐러드를 한입 먹어 보고 간을 맞춰야 한다. 마찬가지로 아마트리치아나 파스타에 판체타를 큼직하게 썰어 넣어 풍부한 맛을 더할 경우, 소스가 판체타의 짠맛을 모두 흡수한 다음 맛을 보고 간을 맞추어야 한다. 피자 반죽 레시피에서 반죽에 올리브유를 넣고 치댄 다음 소금을 넣으라고 설명한다면 그대로 따르는 것이 과연 옳은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내용이 형편없는 레시피일수록 근거 없는 이야기와 잘못된 정보가 말도 못 하게 넘쳐나는데, 그중에서 알고 있는 것을 지침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즉흥연주를 하려면 음표부터 배워야 하듯이 요리에서는 소금과 지방이라는 멜로디를 연주한 2개의 음을 배운 것이다. 이제 세 번째 음인 산을 터득하면 더욱 아름다운 하모니를 연주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