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팅 : resting, 말 그대로 고기에 휴식을 주는 것이다. 조리 후 바로 다른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잠시 쉬게 두는 과정이다. 프라이팬에서 미디엄 레어로 구운 스테이크를 굽자마자 도마 위에 올려 바로 반으로 자른다면 어떻게 될까? 칼이 들어가는 순간 많은 육즙이 흘러나와 도마 위를 적실 것이다. 그래서? 스테이크가 최적의 상태보다 조금 덜 촉촉하고 맛도 좀 덜하게 된다. 이런 비극은 자르기 전에 스테이크를 레스팅 하면 쉽게 피할 수 있다.
이렇게 즙이 많이 나오는 건 고기의 한 면이 뜨거운 팬이나 그릴에 닿을 때 그 표면에 있는 육즙이 강제로 고기의 가운데로 모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테이크 가운데에 있는 수분이 농축된다. 그리고 스테이크를 뒤집으면 똑같은 일이 다른 면에도 일어난다. 스테이크의 가운데는 수분으로 과포화 상태가 된다. 즉 머금을 수 있는 양 이상의 수분이 모이는 것이다. 그래서 스테이크를 잘라서 보면 남은 수분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런 스테이크를 레스팅 하면 가장자리에서 강제로 빠져나와 가운데로 모였던 수분이 다시 가장자리로 되돌아갈 시간을 갖게 된다. 스테이크를 근섬유에 해당하는 큰 빨대 묶음이며 각각의 빨대에는 액체가 가득 차 있다고 가정해 보자. 고기가 익으면서 근섬유 빨대는 모양을 바꾸기 시작하고 그러자 더 좁아지면서 속에 든 액체에 압력이 가해지게 된다. 고기는 겉면에서 안으로 익기 때문에 빨대는 가장자리가 더 세게 조이고 가운데로 갈수록 약간씩 느슨해진다. 지금까진 별 문제없다. 논리적으로 가장자리가 가운데보다 더 세게 조인다면 액체는 가운데로 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가 있다. 물은 압축성이 아니다. 즉, 물을 끝까지 가득 채운 2L짜리 병이 있다면 병의 크기를 바꾸지 않는 한 병 속에 물을 더 넣는 것은 거의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스테이크에서도 똑같다.
물리적으로 더 넓어지도록 어떻게든 근섬유의 중앙을 늘이지 않는 이상 액체를 더 많이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생 스테이크와 익은 스테이크의 가운데 둘레를 재면 근섬유가 더 넓어지지 않는다는 걸 쉽게 증명할 수 있다. 액체가 가운데로 강제로 들어간다면 둘레는 커져야만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가운데가 불룩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건 가장자리가 수축했기 때문에 가운데가 더 넓어 보이는 착시현상일 뿐이다. 사실, 이 경우를 살펴보면 완전히 정반대이다. 미디엄 레어 스테이크의 가운데가 52도씨로 올라갈 때 가운데도 같이 수축한다. 그래서 수분이 빠져나오게 되는 것이다. 수분은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인가? 갈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빨대의 끝이거나 스테이크의 표면이다. 스테이크를 구울 때 지글지글하는 소리를 들어봤는가? 바로 수분이 빠져나와서 증발하는 소리이다.
이 이론에 잠시 휴식을 주자. 그렇다면 레스팅 하지 않은 스테이크는 레스팅 한 스테이크보다 왜 육즙이 더 많이 흘러나올까? 그건 모두 온도와 관계가 있다. 우리는 이미 근섬유의 폭은 고기가 조리되는 온도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는 걸 알고 있고 어느 정도, 모양에 있어서 이 변화는 다시 되돌릴 수는 없다. 82도씨로 조리된 고기 조각은 절대로 생고기 상태에서 가지고 있던 수분량을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고기가 약간 식으면 고기 조직이 조금 느슨해진다. 즉 근섬유는 다시 약간 넓어져서 수분을 조금 더 머금을 수 있게 된다. 동시에 스테이크 속에 든 육즙이 식으면서 단백질과 다른 용해성 물질이 육즙을 약간 걸쭉하게 만든다. 구이를 하고 난 기름을 팬에 밤새 두면 거의 젤리 같아지는 걸 본 적이 있지 않나? 이렇게 걸쭉하게 되는 현상 덕분에 여러분이 고기를 자를 때 스테이크에서 육즙이 너무 빨리 흘러나오지 않게 된다. 나는 6개의 스테이크 모두를 속의 온도가 54도씨가 되도록 조리했다. 그러고는 2분 30초마다 하나씩 가운데를 잘라 육즙이 얼마나 흘러나오는지를 살펴보았다. 어떤 현상이 벌어졌는지 살펴보자.
레스팅 하지 않았을 경우 : 팬과 가장 가까운 부위였던 스테이크 겉면의 고기는 93도씨가 훨씬 넘는다. 이 온도 범위에서 근섬유는 아주 꽉 조이게 되는데 그래서 수분을 머금고 있지 못하게 된다. 스테이크 안쪽은 52도씨이다. 이 온도에서는 육즙을 어느 정도 머금을 수 있지만, 근섬유를 잘라 버리게 되면 그건 탄산음료 병의 옆면을 자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육즙의 일부는 대부분 표면장력을 통해 계속 그곳에 있겠지만 수분이 흘러나오게 된다.
5분 간 레스팅한 뒤 : 고기의 가장 바깥층은 63도씨 정도로 내려가고 스테이크 가운데는 아직 52도씨이다. 이 단계에서 근섬유는 약간 느슨해져서 폭이 조금 늘어난다. 이렇게 늘이는 동작으로 근섬유의 가운데와 끝부분 사이의 압력차이가 생긴다. 그래서 가운데에 있던 액체가 가장자리로 끌려 나온다. 그 결과 스테이크 가운데에는 수분이 적어지게 된다. 이때에 스테이크를 자르면 육즙 일부는 흘러나오지만 전보다 훨씬 적다.
10분 간 레스팅한 뒤 : 스테이크 가장자리는 52도씨 정도로 식어서 가운데로부터 수분을 더 많이 빨아들이게 된다. 게다가 스테이크 가운데는 49도씨로 식어서 폭이 조금 더 넓어지게 된다. 고기를 이 단계에서 자르면 수분이 스테이크 전체에 아주 골고루 퍼져 있어서 표면 장력이 수분을 충분히 머금을 수 있기 때문에 접시로 흘러나오지 않는다.
차이가 너무나도 뚜렷하다. 레스팅 하지 않은 스테이크를 다시 한번 보고 충분히 레스팅 한 스테이크를 비교해 보면, 레스팅 한 스테이크는 육즙이 원래 있던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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