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과학

세계의 신맛과 산성 물질 만들기

김소먹 2024. 5. 2. 16:06

먼저 세계의 신맛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부터 살펴보자. 상징성이 있는 요리는 독특한 신맛을 가진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땅콩버터 샌드위치는 잼의 톡 쏘는 맛이 더해지지 않으면 맛이 없다. 영국인치고 피시 앤 칩스를 먹으면서 맥아 식초를 뿌리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또 살사가 들어가지 않은 카르니타스 타코는 상상하기 힘들다. 상하이 지역의 전통 만두 샤오룽바오는 반드시 중국 흑초와 함께 나온다. 지방과 마찬가지로 산성 재료도 요리의 특성을 바꿀 수 있으므로 어떤 지역에서 어떤 전통에 의해 만들어진 요리인가에 따라 신맛을 내는 재료가 정해진다.

특정 지역에서 생산된 식초는 대체로 그 지역의 농업적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주요 와인 생산지인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스페인에서는 요리에 와인 식초를 흔히 쓴다. 카탈루냐 지방에서 많이 먹는, 고추와 구운 견과류가 들어가는 로메스코 소스에는 셰리 식초가 어울리고, 생굴에 곁들이는 미뇨네트 소스에는 샴페인 식초가 어울린다. 또 붉은 치커리에 끼얹을 드레싱이나 붉은 양배추를 절여서 만드는 독일의 정통 음식 블라우크라우트에는 레드 와인 식초가 잘 맞다. 이와 달리 태국과 베트남,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는 쌀 식초를 흔히 사용하고, 영국과 독일 그리고 미국 남부에서는 샐러드에 사과 식초를 뿌린다. 필리핀의 주요 작물인 사탕수수로 만들어 많이 사용하는 사탕수수 식초 역시 미국 남부 사람들이 좋아하는 식초 중 하나다. 지중해 지역의 해안가 기후에서는 레몬 나무가 잘 자라므로 타불레와 후무스, 구운 문어, 니수아즈 샐러드, 회향과 오렌지가 들어간 시칠리아식 샐러드에 레몬즙을 짜서 넣는다. 반면에 라임은 열대 기후에서 잘 자란다. 멕시코, 쿠바, 인도, 베트남 , 태국에서는 어디든 감귤류 과일이 필요한 곳에 라임을 많이 쓴다. 과카몰레, 닭고기 쌀국수 퍼가, 그린 파파야 샐러드, 멕시코의 피코 데 가요에 해당하는 인도 음식 카춤버에 라임이 잘 어울리는 이유도 그래서다, 단, 포장 판매하는 제품을 절대로 사용해선 안 된다. 농축액에 보존제와 시트러스 오일을 섞은 이런 제품은 쓴맛만 날 뿐 갓 짜낸 즙의 깨끗하고 선명한 풍미는 전혀 얻을 수 없다.

인도의 아차르와 이란의 토르시, 한국의 김치와 일본의 츠케모노, 독일의 사우어크라우트와 미국 남부의 차우차우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화권에는 피클이 있다. 냉장고에 어떤 피클이 있느냐에 따라 같은 스테이크라도 몇 조각 잘게 썰어서 김치를 듬뿍 넣고 밥 위에 올리면 ㄹ한국식 비빔밥이 될 수 있고, 김치 대신 절인 당근과 할라피뇨를 얹으면 타코와 함께 먹을 수도 있다.

신맛의 균형을 제대로 잡는 비밀 병기로 발효 유제품을 활용해 보자. 샐러드에 치즈를 토핑으로 얹을 때 기왕이면 그리스 페타 또는 이탈리아 고르곤 졸라, 스페인 만체고 치즈를 사용하자. 또 유대 음식인 랏키스에 사워크림을, 타코에 크레마를 얹어야 하듯이 프랑스식 베리 타르트에는 크렘 프레슈를 곁들이고, 서아시아 나라에서 코프다라 부르는 작은 양고기 케밥에는 요구르트가 잘 어울린다. 같은 양고기 어깨살이라도 절인 레몬을 넣어 푹 삶으면 모로코 음식이, 화이트 와인과 피콜린 올리브를 넣고 익히면 프랑스 남부요리가 되며, 레드 와인과 토마토를 함께 넣고 끓이면 그리스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잘게 썬 양배추 샐러드도 마찬가지다. 머스터드와 사과 식초가 들어가면 미국 남부 요리가 되지만, 라임즙과 고수를 섞으면 멕시코식 샐러드가 된다. 그리고 청주 식초와 파, 구운 견과류가 들어가면 중국 요리가 된다. 신맛에서 나는 풍미가 요리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유념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자.

소금이나 지방은 각각 특정한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요리에 첨가할 수 있으나, 음식에 산성 물질을 포함시키기 위해서는 두 가지 간단한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 하나는 단시간에 가능한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이 좀 걸린다. 단시간에 가능한 방법은? 음식을 갈색으로 익히는 것이다. 앞서 소금과 지방을 설명하면서 음식의 표면 온도가 끓는점을 넘어서면 갈색으로 변한다고 이야기했다. 식빵이나 얇게 자른 빵을 토스터에 넣고 구울 때, 오븐에서 쿠키와 케이크를 구울 때, 그릴에 고기, 생선, 채소를 올려서 구울 때, 또는 냄비에서 캐러멜을 만들 때 모두 이와 같은 방응을 볼 수 있다. 당 성분이 갈색으로 변하는 화학반응을 캐러멜화라고 한다. 육류와 해산물, 채소, 빵과 과자 등이 갈색으로 변하는 화학반응은 이를 발견한 과학자 루이 카미유 마이야르의 이름을 따서 마이야르 반응이라고 한다. 뒤에 열을 다룬 부분에서 맛을 증대시키는 이 미스터리한 화학반응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캐러멜화와 마이야르 반응은 전혀 다른 과정으로 진행되지만, 몇 가지 비슷한 점이 있다. 신맛이 나는 물질과 함께 음식 맛을 좋게 하는 여러 가지 분자가 부산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캐러멜화의 경우 하나의 당 분자가 수백 가지 각기 다른 새로운 결합물이 되는데, 그중에 산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설탕을 가열해 만든 캐러멜은 설탕과 무게가 같아도 단맛은 같지 않으며 산성도 캐러멜이 더 강하다. 탄수화물과 단백질에서도 마이야르 반응을 통해 비슷한 산성 화합물이 만들어진다. 음식이 갈색으로 변하면 시큼한 맛을 포함한 여러 가지 새로운 맛이 생겨나므로 산성 물질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만 음식을 갈색으로 만드는 경우는 드물지만, 이 방법은 분명 신맛을 더하는 용도로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다. 같은 양의 설탕을 넣어 만든 두 아이스크림을 맛본다고 생각해 보자. 하나는 유제품 재료에 설탕을 바로 첨가했고 다른 하나는 설탕 중 일부를 다크 캐러멜로 만든 다음 다른 재료와 섞었다. 이렇게 캐러멜화된 설탕이 들어간 아이스크림은 덜 달고 훨씬 더 복합적인 맛이 난다. 중심이 되는 맛인 단맛이 신맛과 대비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보다 시간은 훨씬 더 오래 걸리지만 주방에서 산성 물질을 직접 만들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발효다. 발효가 진행되면 맛을 향상시키는 각종 반응이 일어나면서 동시에 효모나 균, 혹은 이 두 가지 모두에 의해 탄수화물이 이산화탄소와 산성 물질, 알코올 성분으로 바뀌는 현상이 나타난다. 와인, 맥주, 사과주는 물론이거니와 자연적으로 팽창된 빵과 모든 피클, 염장육, 발효 유제픔, 심지어 커피와 초콜릿까지 발효 식품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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