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과학

파이반죽과 타르트반죽 만들기

김소먹 2024. 3. 27. 01:59

겹겹이 나뉘는 페이스트리는 과학적인 원리 못지않게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비법도 많다. 특히 손이 차가워서 페이스트리 만드는 일을 하게 됐다는 요리사의 이야기 페이스트리 반죽을 만들 때 지방을 차갑게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려 준다. 실제로 그렇게 직업을 구한 사례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업에서 활동하는 페이스트리 제빵사는 모든 것을 차갑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서늘한 대리석 작업대를 이용하고 믹서에 끼우는 볼과 금속도구는 냉동실에 미리 넣어둔다. 한 페이스트리 제빵사는 심지어 반죽을 만들 때마다 주방 전체 온도를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낮췄다. 다른 직원이 출근하기 2시간 전에 도착해서 요리사 가운 위에 스웨터와 두툼한 조끼를 여러 겹 겹쳐 입고는 서둘러 반죽을 만들었다. 다른 요리사가 오븐이며 가스레인지, 그릴을 켜기 전에 반죽을 끝나치기 위해서이다. 페이스트리를 만들 때 필요한 모든 의사 결정에 무조건 온도를 고려하던 노력은 그만한 성과로 돌아온다. 이러한 노력 끝에 만들어진 페이스트리는 정말 너무나 가벼운 수많은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손이 차갑건 차갑지 않건 간에, 지방이 만들어 내는 공간 사이사이에 글루텐이 형성된 층이 겹겹이 쌓인 질감을 얻고자 한다면 온도에 유념해야 한다. 버터는 온도가 높아져서 물렁해질수록 밀가루와 더 쉽게 결합한다. 지방은 글루텐 형성을 방지하므로 버터와 밀가루가 더 찰싹 달라붙을수록 파삭함보다는 부드러운 맛이 더 강한 반죽이 된다. 글루텐이 형성되지 않도록 하려면 버터를 차갑게 유지해야 한다. 온도가 낮아야 다른 재료와 혼합하고 밀어서 반죽을 만드는 동안에도 유화를 이루는 미세한 결합이 끊어지지 않는다. 버터는 중량의 약 15~20퍼센트가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반죽과 합쳐져 물렁해지고 녹으면 물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 물방울이 밀가루와 결합하면 기다란 글루텐 사슬이 형성되어 반죽의 얇은 층이 서로 달라붙는다. 이런 상태에서는 버터에서 나오는 증기로 겹겹이 분리되면서 형성되는 파삭한 식감을 얻을 수 없고, 오븐에서 꺼내면 쫄깃하고 쭉 늘어나는 페이스트리를 발견하게 된다.
 크리스코 같은 식물성 쇼트닝은 버터보다 온도가 쉽게 오르지 않아서 주방이 따뜻할 때도 고형 상태를 유지한다. 문제는 맛이 없다는 점이다. 버터는 체온과 비슷한 온도에서 녹으면 오직 혀만이 느낄 수 있는 진하고 만족스러운 맛이 남지만, 쇼트닝은 체온보다 따뜻한 곳에서도 안정성을 유지하게 하는 화학적 특성이 오히려 불쾌하고 플라스틱 같은 맛을 남긴다. 이는 쇼트닝의 편리함을 누림으로써 맛을 포기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해결책도 있다. 즉 몇 가지 방법을 동원하면 포크를 살짝 대기만 해도 부스러기가 떨어질 만큼 파삭하면서도 진한 버터 맛을 내는 파이 껍질을 만들 수 있다. 가정에서는 토막토막 자른 버터와 밀가루, 사용할 도구를 모두 미리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사용하면 반죽에 버터를 넣은 후에도 고형 상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다른 재료와 혼합하고, 밀대로 밀고, 모양을 만들고, 굽는 단계 사이사이에도 반죽을 냉장고에 넣어서 차가운 상태가 유지되도록 하자. 내가 찾은 가장 간단한 페이스트리 반죽 만드는 법은 미리 만들어서 꼼꼼히 포장한 뒤 냉동 보관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최대 2개월까지 두고 사용할 수 있다. 시간이 가장 많이 드는 단계를 생략할 수 있으므로, 어느 날 갑자기 파이가 당길 때마다 금방 구워서 먹을 수 있다. 모양을 만든 차가운 파이는 예열해 둔 오븐에 바로 넣어야 한다. 뜨거운 오븐에 들어가야 버터에 함유된 수분이 빠른 속도로 증발한다. 이렇게 발생한 증기가 반죽 사이사이에 층을 이루고, 열을 가할수록 더욱 확장되어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파삭한 식감이 형성된다. 오븐이 충분히 뜨겁지 않으면 물이 증발하지 못하고 층을 형성하기 전에 반죽이 다 식어 버리므로 오븐에서 꺼냈을 때 축축한 파이를 발견하고는 실망하게 될 것이다.
 지방의 과학적 특성을 토대로 제법 탄탄하면서도 섬세한 타르트 반죽을 만들 수 있다. 과즙이 많은 여름철 핵과를 잔뜩 쌓아 올려도 무너지지 않으면서 한입 베어 물면 파삭하게 부스러지는 이상적인 반죽말이다. 이를 위해 모든 재료와 도구를 차갑게 보관하고, 버터는 큼직한 덩어리로 잘라서 사용하며, 반죽은 글루텐이 조금 생겨 파삭한 층이 형성될 만큼만 섞어서 완성한다. 그런 다음 부드러운 맛을 위해 크림이나 크렘 프레슈 등 액상 지방을 이용해 반죽을 결합시키고 지방이 버터와 닿지 않으면서 남은 밀가루를 감싸 글루텐이 추가로 형성되지 않도록 한다. 이 방법으로는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 이 방법으로 반죽을 몇 개 만들어 냉동실에 보관해 놓자. 언제든 근사한 저녁 식탁을 차릴 수 있다. 집에 친구를 초대하고 싶은데 식재료라곤 시들시들한 양파 한 바구니와 파르미지아노 치즈 덩어리, 앤쵸비 캔이 전부일 때, 파티에 가져갈 특별한 디저트가 필요한데 도저히 시간이 없을 때, 또는 장 보러 갔다가 식재료를 좀 많이 사 왔을 때를 대비할 수 있다. 평범한 재료를 특별한 음식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