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과학

파삭한 식감과 부드러운 식감

김소먹 2024. 3. 27. 01:36

밀에 함유된 글루텐은 글루테닌과 글리아딘이라는 두 가지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다. 밀가루에 액체를 넣고 섞으면 이 단백질들이 서로 결합해 긴 사슬을 형성한다. 반죽을 계속 치대거나 섞을수록 이 사슬은 탄탄해지고 더 넓은 글루텐 그물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거미줄 같은 망이 점차 확장되는 것을 글루텐 형성이라고 하며, 이를 통해 반죽은 쫀득해지고 탄력이 생긴다.
 제빵사들이 단백질 함량이 비교적 높은 밀가루를 오랜 시간 공들여 치대면서 바삭하면서도 쫄깃한 시골 빵 반죽을 만들 때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소금은 글루텐 그물이 유지되도록 한다. 반면 페이스트리는 일반적으로 부드럽고 파삭하면서 촉촉한 식감이 되어야 하므로 제빵사들은 페이스트리를 만들 때 글루텐 형성을 어떻게든 제한하거나 통제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단백질 함량이 낮은 밀가루를 사용하고 반죽도 많이 치대지 않는다. 버터밀크, 요구르트 같은 설탕과 산은 글루텐 형성을 저해하므로 이러한 재료를 초반에 첨가하면 부드러운 페이스트리를 만들 수 있다. 지방 함량이 높아도 글루텐 그물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다. 지방이 글루텐 사슬을 하나하나 감싸서 사슬이 서로 들러붙거나 결합해 길이가 늘어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쇼트닝이라는 이름도 글루텐 사슬을 짧게 유지되도록 한다는 기능에서 나왔다. 모든 빵과 과자의 식감은 네 가지 요소가 좌우한다. 바로 지방과 물, 효모 그리고 반죽을 치댄 정도다. 더불러 지방과 밀가루가 혼합된 방식과 혼합 정도, 밀가루 종류, 지방의 종류와 사용할 때의 온도도 식감에 영향을 준다.
 쇼트 반죽은 입에 넣었을 때 부드러운 맛이 느껴지면서 잘 부스러지고 입에서 살살 녹는 빵과 과자를 만드는 대표적인 반죽이다. 밀가루와 지방이 한데 잘 어우러져 매끈하고 균일한 형태가. 쇼트브레드 쿠키를 만들 때처럼 이 반죽을 쓸 경우 대부분 아주 말랑한 버터나 녹은 버터를 사용해 거의 액체화된 지방이 밀가루 입자 사이사이에 빠른 속도로 들어가 감싸게 함으로써 글루텐 그물 형성을 막는다. 쇼트 반죽은 팬에 담으면 납작하게 펴질 정도로 말랑말랑하다.
 플레이키 반죽은 한입 베어 물면 잘게 부스러진다기보다 겹겹이 분리되는 빵과 과자를 만드는 반죽이다. 정통 미국식 파이와 프랑스의 갈레트처럼 사과나 즙이 가득한 여름철 과일을 수북이 올려도 충분히 지탱할 만큼 단단하다. 또한 파이 껍질처럼 잘라 보면 불규칙한 모양의 얇은 층이 섬세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 정도로 힘 있는 껍질이 나오려면 지방의 일부는 밀가루와 결합해 글루텐이 최소 수준으로 형성되어야 한다. 완벽한 파이 껍질이나 갈레트 특유의 특징적인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방을 반죽과 아예 따로 놀 정도로 아주 차가운 곳에 보관했다가 넣는다. 파이 반죽을 밀대로 밀면 군데군데 버터 덩어리가 보일 정도다. 이 상태로 파이를 만들어서 뜨거운 오븐에 넣으면 차가운 버터 덩어리에 붙들려 있던 공기, 버터에 함유된 수분에서 나온 증기가 한꺼번에 반죽을 밀어내면서 층이 나뉘고 특유의 구조가 만들어진다.
 아주 여러 겹으로 층이 나뉘는 빵과 과자를 만드는 반죽은 페이스트리 반죽이라고 한다. 치즈 스트로, 팔미에, 슈트루델 같은 정통 퍼프 페이스트리를 먹고 나면 접시에 깨진 유리 조각처럼 자잘한 부스러기가 얼마나 떨어지는지 모두가 알 것이다. 아주 난리가 난다. 이와 같은 질감을 얻으려면 커다란 덩어리로 뚝 자른 버터를 반죽으로 감싸야한다. 반죽과 버터가 샌드위치처럼 겹쳐진 것을 밀대로 밀고 접는 방식을 턴 이라고 하며, 정통 퍼프 페이스트리는 여섯 번 턴을 하면 정확히 730겹의 반죽 사이에 729겹의 버터 층이 생긴다. 이 반죽을 뜨거운 오븐에 넣으면 버터가 들어간 층이 증기로 바뀌면서 730겹이 형성되는 것이다. 페이스트리 반죽을 만들 때는 버터와 작업대를 모두 차갑게 유지해서 버터가 녹지 않되 납작하게 펼 수 있을 만큼만 말랑해지도록 해야 한다. 효모가 들어간 반죽을 치대서 글루텐이 형성되도록 한 뒤 같은 방식을 적용하면 크루아상, 데니시, 특별한 브레통의 일종인 퀸 아망처럼 쫄깃한 파삭함이 아슬아슬하게 공존하는 여러 겹의 빵이 완성된다.
 부드러운 식감의 쇼트브레드 쿠키와 크림 비스킷은 어떻게 만들까? 쇼트브레드 쿠키는 맛이 부드럽고 자잘한 모래처럼 부스러지는 것이 특징이다. 반죽을 만드는 초기 단계에서 밀가루에 지방을 섞어야 이와 같은 식감이 나온다. 버터가 마요네즈처럼 잘 발릴 정도로 말랑한 상태가 되었을 때 밀가루에 첨가해 지방이 밀가루 입자를 수월하게 감싸면서 글루텐 사슬 형성을 방지하는 레시피가 대표적이다. 반죽을 만들 때 크림이나 크렘 프레슈, 연성 크림치즈, 오일 등 부드러운 지방 또는 액상 지방을 사용하면 밀가루를 코팅해 부드러운 식감을 얻을 수 있다. 전통적인 크림 비스킷은 차가운 휘핑크림을 사용해 지방과 액체 재료가 잘 달라붙도록 하는 동시에 밀가루를 재빨리 감싼다. 이렇게 하면 글루텐이 형성되도록 물을 따로 추가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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