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45

산성물질의 작용

산은 주로 맛에 영향을 주지만, 음식의 색과 질감을 바꾸는 화학반응도 촉발한다. 이와 같은 영향을 예측한다면 산을 언제, 어떻게 넣어야 할지 더 수월하게 결정할 수 있다. 산이 들어가면 생기 넘치던 녹색이 흐릿해지므로, 샐러드드레싱은 최대한 마지막에 뿌리고 허브 살사를 만들 때도 식초는 되도록 마지막에 섞는 것이 좋다. 시금치와 같은 녹색 채소를 익힌 후 레몬즙을 짜 넣을 때도 마찬가지다. 녹색과 달리 적색과 보라는 산과 만나면 색이 더 선명해진다. 적양배추와 적근대 줄기, 비트를 사과, 레몬, 식초 등 산성 물질을 함유한 재료와 조리하면 색깔을 가장 생생하게 유지할 수 있다. 생과일과 채소는 산소에 노출되면 갈색으로 변하는 효소 반응인 산화에 취약하다. 썰어 놓은 사과와 아티초크, 바나나, 아보카도에 ..

조리과학 2024.05.03

세계의 신맛과 산성 물질 만들기

먼저 세계의 신맛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부터 살펴보자. 상징성이 있는 요리는 독특한 신맛을 가진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땅콩버터 샌드위치는 잼의 톡 쏘는 맛이 더해지지 않으면 맛이 없다. 영국인치고 피시 앤 칩스를 먹으면서 맥아 식초를 뿌리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또 살사가 들어가지 않은 카르니타스 타코는 상상하기 힘들다. 상하이 지역의 전통 만두 샤오룽바오는 반드시 중국 흑초와 함께 나온다. 지방과 마찬가지로 산성 재료도 요리의 특성을 바꿀 수 있으므로 어떤 지역에서 어떤 전통에 의해 만들어진 요리인가에 따라 신맛을 내는 재료가 정해진다.특정 지역에서 생산된 식초는 대체로 그 지역의 농업적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주요 와인 생산지인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스페인에서는 요리에 와인 식초를 흔히 쓴..

조리과학 2024.05.02

지방 활용하기

이란에서는 아주 특별한 날에만 식사 후 디저트를 준비하므로 집에서 빵을 만드는 경우가 거의 없다. 게다가 건강에 무척 관심이 많은 어머니는 설탕을 너무 많이 먹지 않도록 세심히 챙기셨다. 쿠키나 케이크를 먹으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힘겨운 과정을 거쳐 직접 만들어야만 했다. 한 예로 집 주방에는 스탠드 믹서도, 버터를 녹일 전자레인지도 없었고, 쓰고 남은 버터는 몽땅 냉동실에 들어가 있었다. 일단 쿠키나 케이크가 당기기 시작하면 늘 마음이 급해졌다. 레시피마다 버터는 실온에 두었다가 쓰라는데 꽁꽁 언 버터가 말랑해질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어쩌다가 그 가르침을 따를 때에도 수월하게 크림화할 수 있는 전동 믹서가 없어서인지 손에서 나오는 쿠키 반죽은 늘 엉망진창이었다. 너무 많이 치댄 반죽 사이에는 전혀..

조리과학 2024.04.03

부드러운 식감의 케이크와 가벼운 식감의 케이크

몇 년 동안 어떤 케이크를 먹어도 만족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내가 만들어서 먹든 레스토랑이나 제과점에서 사서 먹든 다 마찬가지였다. 나는 촉촉하면서도 풍미가 진한 케이크를 원했는데 대부분 두 가지 중 하나만 충족시켰다. 시판 케이크 믹스로 만들면 질감은 원하는 대로 나오지만 맛이 없고, 고급 제과점에서 산 케이크는 풍미가 가득한 대신 메말라 있거나 뻑뻑했다. 그래서 '원래 케이크는 그 두 가지 특성 중 하나만 나타나나 보다.'라고 체념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어느 생일 파티에서 초콜릿 케이크를 먹었는데 너무나 촉촉하면서도 진한 맛에 머리가 어질어질할 만큼 놀라고 기뻤다. 며칠이 지나도 그 맛이 도저히 잊히지 않아서 나는 케이크를 만든 친구에게 레시피를 알려 달라고 사정했다. 그 친구는 아주 깊고 맛이..

조리과학 2024.04.02

파이반죽과 타르트반죽 만들기

겹겹이 나뉘는 페이스트리는 과학적인 원리 못지않게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비법도 많다. 특히 손이 차가워서 페이스트리 만드는 일을 하게 됐다는 요리사의 이야기 페이스트리 반죽을 만들 때 지방을 차갑게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려 준다. 실제로 그렇게 직업을 구한 사례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업에서 활동하는 페이스트리 제빵사는 모든 것을 차갑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서늘한 대리석 작업대를 이용하고 믹서에 끼우는 볼과 금속도구는 냉동실에 미리 넣어둔다. 한 페이스트리 제빵사는 심지어 반죽을 만들 때마다 주방 전체 온도를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낮췄다. 다른 직원이 출근하기 2시간 전에 도착해서 요리사 가운 위에 스웨터와 두툼한 조끼를 여러 겹 겹쳐 입고는 서둘러 반죽을 만들었다. 다른 요..

조리과학 2024.03.27

파삭한 식감과 부드러운 식감

밀에 함유된 글루텐은 글루테닌과 글리아딘이라는 두 가지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다. 밀가루에 액체를 넣고 섞으면 이 단백질들이 서로 결합해 긴 사슬을 형성한다. 반죽을 계속 치대거나 섞을수록 이 사슬은 탄탄해지고 더 넓은 글루텐 그물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거미줄 같은 망이 점차 확장되는 것을 글루텐 형성이라고 하며, 이를 통해 반죽은 쫀득해지고 탄력이 생긴다. 제빵사들이 단백질 함량이 비교적 높은 밀가루를 오랜 시간 공들여 치대면서 바삭하면서도 쫄깃한 시골 빵 반죽을 만들 때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소금은 글루텐 그물이 유지되도록 한다. 반면 페이스트리는 일반적으로 부드럽고 파삭하면서 촉촉한 식감이 되어야 하므로 제빵사들은 페이스트리를 만들 때 글루텐 형성을 어떻게든 제한하거나 통제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조리과학 2024.03.27

유화의 분리와 고정

먼저 지난 포스팅에 이어 버터를 마무리해 보자면, "버터가 충분히 들어간 음식은 뭐든 맛이 좋다." 줄리아 차일드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버터를 이용해 유화로 만드는 또 다른 음식인 버터 소스로 만들었다면 이 조언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버터와 물에서 유화 반응이 일어나도록 하려면 온도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 버터 소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따뜻하게 달군 팬과 차가운 버터를 준비한다, 프라이팬에서 바로 소스를 만드는 방법도 있다. 스테이크나 생선 필레, 돼지갈비를 프라이팬에 구운 다음 고기나 생선을 다른 그릇에 옮기고 남은 기름을 따라낸 뒤 다시 프라이팬을 가열한다. 여기에 물이나 육수, 와인 등의 액체를 바닥 전체에 깔릴 만큼 붓고 고기나 생선을 굽는 동안 팬에 남은 작고 바삭한 덩어..

조리과학 2024.03.21

마요네즈와 버터 만들기

이번 포스팅에서는 크리미 한 식감의 마요네즈를 만들어보자. 마요네즈는 달걀노른자에 기름을 조금씩 떨어뜨리며 천천히 저어서 만드는 수중유적형, 즉 유화 반응을 거쳐 물속에 기름 입자가 포함된 형태가 된 식품이다. 달걀노른자 자체도 지방과 물이 섞인 유화 상태에 해당된다. 희소식은 노른자에 함유된 레시틴이라는 성분이 지방과 물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유화제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힘차게 잘 저으면 레시틴이 노른자에 함유된 극소량의 수분을 오일 방울과 결합시켜 작은 공기 방울로 전체를 감싼다. 이를 통해 두 재료가 합쳐져 진한 맛을 내는 하나의 소스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유화가 다 그렇듯이 마요네즈도 호시탐탐 분리될 기회를 노린다. 서로 적대하는 물과 기름의 관계로 돌아가려고 한다는 의미이다. 기본적으로 마..

조리과학 2024.03.21

지방의 작용 : 크리미한 식감

지난 포스팅에 이어 바삭한 식감에 대해 마무리해 보자면, 고온의 지방과 접촉한 표면에 있던 수분이 증발했을 때, 재료는 바삭해진다고 했다. 그러므로 노릇노릇하고 바삭한 음식을 만들려면 조리하는 팬과 지방이 모두 고온으로 유지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프라이팬을 예열하고 지방을 넣어서 온도를 높이자. 재료를 넣을 때는 겹치지 않게 해야 한다. 재료가 서로 겹치면 온도가 갑자기 뚝 떨어져 수분이 응축되고 음식은 질척해진다. 연하고 부스러지기 쉬운 재료는 특히 바삭하게 만들기가 어렵다. 충분히 가열되지 않은 지방에 재료를 넣으면 기름을 몽땅 흡수해서, 예컨대 보기만 해도 입맛이 떨어지는, 익긴 했으나 허옇고 기름진 생선 필레가 된다. 스테이크와 돼지갈비도 덜 가열된 지방에 구우면 다 익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

조리과학 2024.03.21

바삭한 식감 : 렌더링과 발연점

육류의 근육 사이사이에 덩어리처럼 약간 붙어 있는 지방이나 피부 바로 아래에 층을 이룬 피하지방을 작게 잘라서 팬에 올리고 물을 약간 더한 후 물이 모두 증발할 때까지 약불로 익히며 지방이 녹아서 추출되는데, 이를 렌더링이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액체로 바뀐 고형 지방은 요리용 매개체로 사용할 수 있다. 오리 구이를 할 때 여분의 지방을 잘라 렌더링으로 기름을 만든 다음 걸러서 유리 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하면 최대 6개월까지 두고 쓸 수 있다. 이렇게 만든 오리기름은 치킨 콩피를 만들 때도 사용할 수 있다. 육류에 포함된 지방은 맛을 좋게 만드는 역할도 하지만, 고기가 바삭한 식감이 되지 않도록 막는 역할도 한다. 즉 렌더링은 요리용 매개체로 쓸 지방을 얻는 목적으로도 활용되지만 음식의 질감을 바꾸는..

조리과학 2024.03.21